법무법인 리틀즈 · 이려진 변호사 · 실전 사례 칼럼 · NSW · 교통사고(CTP) · 뺑소니 · Nominal Defendant
※ 이 글은 실제 유사 사건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사례입니다. 인물·장소·날짜 등 세부 사항은 모두 바꾸었고, 특정 의뢰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례 하나를 들려드리려고 하는데요, 차에 치였는데 그 차가 그대로 달아나 버렸고 번호판을 본 사람도 아무도 없는, 듣기만 해도 막막한 뺑소니 사고 이야기입니다.
40대 의뢰인분은 10년째 일하시던 카페로 출근하려고 평일 아침 7시 무렵 시드니 서부의 한 버스 정류장에 서 계셨습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차 한 대가 커브를 돌지 못하고 인도로 올라와 의뢰인분을 치었고, 멈추지도 않고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오른쪽 다리 복합 골절에 뇌진탕까지 겹쳐 수술을 받으셨고, 석 달 넘게 일을 하지 못하셨는데요, 퇴원하고 저를 찾아오셨을 때 첫마디가 이랬습니다.
"차가 도망갔어요. 번호판도 모르고 보험사도 몰라요. 그냥 제 개인 보험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일을 겪으신 분들 머릿속도 아마 비슷하실 겁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누구한테 달라고 하지?", "수술비는 벌써 나갔는데 이건 어쩌나?", "카페 사장님한테는 언제 돌아간다고 말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무는데요, 뺑소니 사고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데 청구가 되기는 하나요?"입니다. NSW에는 바로 이런 경우를 위해 법이 마련해 둔 길이 있습니다.
차가 없어도 청구할 상대는 있습니다
가해 차량을 확인할 수 없거나 보험이 없는 차에 다쳤을 때 청구하는 Nominal Defendant, 우리말로 '명목상 피고' 제도입니다. NSW에서는 SIRA, 그러니까 NSW 보험규제청이 이 역할을 맡고 실제 청구 처리는 CTP 보험사가 대신하며, 치료비와 소득 지원 같은 법정 급여는 물론 손해배상 청구까지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 운전자는 달아났어도 법이 그 자리에 대신 앉혀 둔 상대가 있는 셈입니다.
다만 요건이 몇 가지 있는데요, 경찰이 현장에 오지 않은 사고라면 사고 후 28일 안에 경찰에 신고해야 하고, 법정 급여 청구는 사고 후 3개월 안이 원칙입니다. 28일이 지나 청구하시면 합당한 설명이 없는 한 청구 전 기간의 소득 지원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 차량을 찾기 위한 조사를 했어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분은 다행히 사고 당일 경찰에 신고를 해 두셨는데, 나중에 보니 이 신고가 청구의 든든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사건이 갈린 곳
청구를 넣자 Nominal Defendant 측에서 이의가 왔습니다. 가해 차량을 찾기 위한 조사(due inquiry and search)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사고 직후 혼자 대응하시느라 CCTV 보존을 요청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 이유였습니다. "번호판을 못 봤어요"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차량을 찾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기록으로 증명해야 하는 요건이거든요. 크게 다치신 분이 병원 침대에서 CCTV까지 챙기기는 어려운 일인데, 이런 답을 받고 그대로 접으시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 조사를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고 지점 반경 약 500m 안에서 카메라가 있을 만한 상점, 아파트, 버스 회사를 모두 찾았더니 15곳이었고, 영상이 지워지기 전에 관리자마다 특정 일시의 영상을 법적 목적으로 보존해 달라는 서면을 바로 보냈습니다. 한국 같으면 사거리에 '목격자를 찾습니다' 현수막이라도 걸었을 텐데, 호주에서는 이 보존 요청 편지가 그 현수막 노릇을 합니다.
대부분은 허탕이었고 각도가 안 맞는 카메라도 있었는데, 사고 지점에서 180m쯤 떨어진 편의점 주차장 카메라에 은색 중형 세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이 잡혀 있었습니다. 번호판은 세 자리만 흐릿하게 보였고, 이 정보를 경찰에 넘겨 조회를 부탁하니 후보 차량이 12대로 추려졌습니다. 그 구역 교통 카메라 자료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날 가장 성실한 목격자는 그 편의점 카메라였던 셈입니다.
끝내 차를 못 찾았는데도
결국 12대 가운데 어느 차도 사고 차량으로 확정되지 않았고, 상대측은 차를 못 찾았으니 요건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수술비는 이미 나갔고 소득도 끊긴 상태라 의뢰인분이 많이 불안해하셨는데요, 이 요건은 차를 꼭 찾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사를 제대로 했는데도 확인이 안 됐다는 점을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존 요청 서면과 발송 기록, 영상 검토 기록, 경찰 조회 요청과 결과, 교통 카메라 확인 요청 기록, 번호판 일부에 대한 분석 자료까지 한 묶음으로 정리해 냈고, 이 자료를 검토한 상대측은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수술비와 재활비는 법정 급여로 처리되었고, 손해배상 협상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소득 손실, 그리고 영구 손상 평가 WPI 15%에 따른 비금전적 손해가 반영되어 이 가상 사례에서는 양측이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금액은 사실관계와 증거마다 달라 여기 적지 않습니다. 의뢰인분은 재활을 마치고 다시 카페로 돌아가셨는데, "개인 보험으로 처리하고 포기하려 했었어요. 이런 제도가 있는 줄 몰랐어요" 하시던 얼굴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사례에서 꼭 가져가셨으면 하는 것은, 차를 찾았느냐보다 찾으려고 무엇을 했는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느냐가 갈림길이라는 점입니다. 경찰 신고는 되도록 빨리 해 두시고, 주변 CCTV 보존 요청은 사고 직후에 보내 두세요. 그 서면 자체가 나중에 노력의 증거가 됩니다.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요청했고 결과가 어땠는지 날짜와 함께 적어 두시면, 휴대폰 메모장 한 페이지가 가장 든든한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호주의 아침 출근길이 늘 무사하길 바라지만, 혹시 이런 일을 겪으셨다면 다치신 몸으로 이걸 다 혼자 챙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경찰 신고 기록과 진단서 사진만 보내 주셔도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지 제가 먼저 살펴 드리겠습니다. 번호판을 모른다고 해서 청구할 곳까지 없는 것은 아니니, 마음 편히 한국어로 물어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뺑소니 차량을 끝내 특정하지 못하면 청구가 거절되나요?
차량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 요건은 차량을 꼭 찾아내라는 뜻이 아니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사(due inquiry and search)를 제대로 했는데도 확인이 안 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단순히 번호판을 못 봤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요청했는지와 결과를 날짜와 함께 남겨 두세요.
뺑소니 사고 CCTV 보존 요청은 언제 해야 하나요?
사고 직후에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CCTV 영상은 보관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고 지점 주변의 상점, 아파트 등 CCTV가 있을 만한 곳의 관리자에게 특정 일시의 영상을 보존해 달라는 서면을 보내세요. 영상 보존을 요청한 서면 자체가 나중에 차량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뺑소니 당한 날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하나요?
경찰이 현장에 오지 않은 사고라면 사고 후 28일 이내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당일 신고가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이 기준 안에 신고하세요. 신고 기록은 차량을 찾으려 노력했다는 증거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법정 급여 청구는 사고 후 3개월 이내가 원칙이니 함께 확인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