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NSW와 VIC 기준입니다. 다른 주는 제도가 다릅니다.
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고가 나고 몇 주 뒤에야 그 무게를 알게 되는 것, 바로 '증거'를 어떻게 남겨 두시면 되는지 NSW CTP와 VIC TAC 청구를 함께 놓고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사고 현장에서는 다친 데를 살피고,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눈치를 보며 차를 갓길로 옮기고, 상대 운전자와 어색하게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사진 몇 장 찍을 여유가 없는 것이 당연한데요, 문제는 몇 주 뒤 보험사가 사고 경위를 보여 줄 자료를 묻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제야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져 보면 사고 날 찍은 사진은 점심에 먹은 쌀국수 한 장뿐이고,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블랙박스도 없는데 내 말을 누가 믿어 주지?"
"그때 옆에 서 있던 그 아저씨 연락처라도 받아 둘걸."
"경찰도 안 왔는데, 이제 와서 신고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사고가 나면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와서 사진도 찍고 경위도 정리해 주는 데 익숙하시다 보니, 호주에서도 누군가 대신 챙겨 주겠거니 하고 기다리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그 자료를 모으는 일이 대부분 다친 분 몫이고, 영상과 연락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하기 어려워집니다.
경찰 신고와 사건 번호부터
경찰 기록은 사고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인데요, 두 주의 규칙이 조금 다릅니다. NSW에서는 경찰이 현장에 오지 않은 사고라면 사고 후 28일 안에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 번호(event number)를 보험사에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VIC는 더 엄격해서, 자동차나 자전거 사고는 경찰 신고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TAC에서 배상을 받을 수 없고, 사정에 따라 TAC가 이를 면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기차나 트램 사고라면 운영자에게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청구 기한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은데, NSW 법정 급여는 사고 후 3개월 안이고 VIC는 사고 또는 부상이 나타난 때부터 1년 안입니다.
NSW에서는 현장에서부터 할 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멈춰서 상대 운전자와 다친 사람에게 이름과 주소, 차량 소유자, 등록번호를 알리도록 되어 있고, 누가 다쳤다면 가능한 한 빨리, 예외적인 사정이 없으면 24시간 안에 경찰에도 알려야 합니다. 이때 받아 두신 상대 정보가 나중에 그대로 청구 자료가 되니, 정신이 없으시더라도 받은 정보는 메모든 사진이든 한곳에 남겨 두시면 됩니다.
사건 번호가 없다면, 다른 자료가 대신 일합니다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경찰 번호가 없으면 끝난 거 아닌가요?"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NSW 보험사는 사건 번호가 없으면 다른 자료로 사고를 확인하는데, 지침이 예로 드는 것이 현장 사진, 목격자 진술, 병원 퇴원 요약, 언론 보도, 대물 보험 자료, CCTV와 블랙박스 영상입니다(Guidelines cl 4.12). 이것도 낼 수 없다면 그 사유를 적은 법정 선언서(statutory declaration)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블랙박스도 목격자도 없으니 청구는 어렵겠다고 혼자 접으시기 전에, 손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부터 같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료를 내실 때는 원본은 직접 보관하고 사본을 내시고, 언제 무엇을 냈는지 목록을 하나 만들어 두시면 나중에 확인하기 편합니다. 상대 차량을 끝내 확인하지 못한 사고라면 '충분한 조회와 수색(due inquiry and search)'을 했는지가 따로 문제가 되는데, 이 이야기는 별도 칼럼에서 다루겠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은 메모리카드 원본을 그대로 두시고, 복사본을 두 곳 이상에 저장해 두시면 마음이 놓입니다. 덮어쓰기 기능이 있는 기계라면 사고 영상부터 따로 빼 두셔야 하는데요, 며칠 동안 출퇴근만 하셔도 그날 영상이 장보러 간 영상으로 바뀌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변 가게나 건물, 주차장 CCTV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덮어쓰기되는 경우가 많아서, 며칠 안에 보관을 부탁해 두시는 것이 좋고, 카메라 위치와 방향, 부탁한 날짜와 담당자 이름을 메모해 두시면 됩니다. 목격자에게는 이름과 연락처를 받고, 본 내용을 짧게 적어 날짜와 서명을 받아 두시면 좋습니다. 현장 사진은 차량 위치와 파손, 도로 표지와 신호, 날씨와 노면, 다친 부위까지 찍어 두시고 지우지 말고 원본 그대로 보관해 주세요.
진료 기록도 증거입니다
진료 기록은 어디를 다쳤고 증상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라서, 첫 진료 때 사고 사실과 아픈 곳을 빠짐없이 말씀해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NSW에서 손해배상 청구가 늦어지면 설명이 필요한데 증상이 늦게 나타난 점을 그 설명에 쓸 수 있고, VIC에서도 부상이 늦게 나타났다면 그때부터 1년을 세기 때문에, 결국 증상이 시작된 날이 기록에 남아 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NSW에서는 청구하시는 쪽에도 의무가 있어서, 보험사가 요구하는 진단서와 의료정보 동의서를 14일 안에 내지 않으면 지급이 정지될 수 있고, 보험사에 협조할 의무와 손해배상에 필요한 자료를 낼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영어 편지가 와서 서랍에 넣어 두셨다면 오늘 저녁에는 꼭 한 번 꺼내 보시고, 보험사에 낸 서류는 늘 사본을 남겨 두세요. 나중에 "그 서류 받은 적 없는데요"라는 답을 들었을 때 가장 든든한 것이 내 쪽 사본입니다.
사고 직후에 모든 것을 챙기실 수 있는 분은 거의 없고, 다치고 놀란 상태에서 연락처 하나 못 받으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호주의 넓은 도로에서 늘 안전 운전, 안전 귀가하시길 바라지만, 혹시 사고를 겪으셨다면 지금 가지고 계신 것에서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경찰 사건 번호가 있다면 그 번호와 함께, 현장 사진이나 블랙박스 파일, 상대 운전자 정보처럼 지금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것을 보내 주시면 무엇이 충분하고 무엇을 더 구해 두면 좋을지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쌀국수 사진만 있으셔도 괜찮으니 한국어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경찰이 현장에 안 왔는데 지금이라도 신고해야 하나요?
NSW에서는 경찰이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사고 후 28일 안에 신고하고 사건 번호를 보험사에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Guidelines cl 4.11). VIC에서는 경찰 신고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TAC 배상을 받을 수 없고, 사정에 따라 TAC가 면제할 수 있습니다(s 39). 어느 주든 늦었다고 생각되시면 바로 신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블랙박스가 없으면 보험 청구가 안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블랙박스는 여러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NSW 지침은 현장 사진, 목격자 진술, 퇴원 요약, 대물 보험 자료, CCTV 등도 사고를 확인하는 자료로 듭니다(cl 4.12). 경찰 사건 번호가 있다면 그것이 기본 자료가 됩니다(cl 4.11). 블랙박스가 없다면 다른 자료를 빨리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목격자 연락처를 못 받았는데 어떻게 하나요?
목격자 진술은 여러 자료 중 하나일 뿐입니다. 현장 사진, 주변 CCTV, 경찰 사건 번호, 진료 기록으로 사고 경위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cl 4.11-4.12). NSW에서 다른 자료도 낼 수 없다면 사유를 적은 법정 선언서를 냅니다(cl 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