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NSW와 VIC 기준입니다. 다른 주는 제도가 다릅니다.
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교통사고 자체보다 더 무섭다는 분도 계신 것, 사고 뒤에 걸려 오는 영어 전화와 영어 서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사고 다음 주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받아 보니 보험사라면서 사고 경위를 묻는데, 말이 빠르고 모르는 단어가 섞여 있습니다. 중간중간 "예스", "오케이" 하다 보니 통화가 끝났고, 끊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뭐에 예스를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뒤에는 이메일로 몇 장짜리 서류가 오고, 어디에 서명하라는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인지는 반쯤만 이해가 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아까 그 통화에서 내가 사고가 내 잘못이라고 한 건 아니겠지?"
"이 서류, 그냥 서명해서 보내면 끝나는 건가?"
"통역을 불러 달라고 하면 귀찮아하지 않을까?"
상담 전화에서 이 대목을 말씀하시다가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요"라고 작아지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어가 어려운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호주 제도는 통역을 쓰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입니다.
통역은 어디에 부탁하나요?
NSW에서 교통사고 제도를 관리하는 SIRA에는 CTP Assist라는 안내 창구가 있습니다. 어느 보험사에 청구하면 되는지, 자격이 되는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고, 통역을 주선해 주며, 자격을 확인한 뒤에는 CTP Legal Advisory Service라는 법률 조언 서비스로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보험사나 SIRA, 분쟁을 다루는 PIC와 통화하실 때도 통역을 요청하실 수 있는데, 방법은 간단합니다. 전화가 연결되면 다른 말보다 먼저 "Korean interpreter, please" 한마디면 됩니다. 저는 이 문장을 냉장고에 붙여 두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보험사 결정에 동의하지 않아 PIC까지 가시더라도 PIC의 분쟁 해결과 의료 평가는 무료이니, 비용 걱정 때문에 통역이나 이의를 미루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통역을 거쳤는데 제 말이 다르게 전달된 것 같으면 어떡하죠?"인데요,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달라고 하셔도 되고, 중요한 내용은 이메일 같은 서면으로 다시 받아 두시면 나중에 번역해 확인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VIC에서는 TAC가 청구를 받습니다. 역시 연락하실 때 통역이 필요하다고 먼저 말씀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시면 됩니다. 소득 지원을 받으려면 의사가 써 주는 Certificate of Capacity라는 서류가 필요하니, 진료 가실 때 이 이름을 영어 그대로 메모해 가서 보여 드리면 서로 편합니다.
서류는 한국어로 먼저 적으세요
번역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기억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사고 경위는 기억이 생생할 때 한국어로 먼저 적어 두세요. 날짜와 시간과 장소, 내 차와 상대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어디를 부딪혔는지, 직후에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를 순서대로 쓰시면, 나중에 영어로 옮길 때도 설명할 때도 훨씬 수월합니다. 현장 사진과 블랙박스 영상은 파일 이름에 날짜를 붙여 두시면 찾기 쉽습니다. 번역본에 공인 번역이 필요한지 같은 형식은 제출하는 곳에 미리 물어보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진료 기록도 같은 방식입니다. 진료 날짜, 병원 이름, 그날 말한 증상, 받은 처방을 한 줄씩 적어 두시고 영수증은 함께 모아 두세요. 치료비를 돌려받을 때 필요합니다. 그리고 받은 서류마다 받은 날짜와 보낸 곳, 회신 기한을 적어 두시면 좋은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보험사가 진단서나 의료정보 동의서를 요구했는데 14일 안에 내지 않으면 지급이 정지될 수 있고, 소득 지원을 끊겠다는 통지서에는 사유와 내부 재검토 절차와 기한, 그리고 IRO 민원 방법과 PIC 신청권까지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서류를 다 읽을 시간이 없다면 그 부분부터 번역해 보시면 됩니다. 몇 장짜리 영어 편지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왜 늘 거기 있는지는 변호사인 저도 궁금합니다.
여기서 제가 꼭 말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다 읽지 못한 서류에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서명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경찰 사건 번호가 없을 때 내는 법정 선언서처럼 내 진술이 들어가는 서류는 더 그렇습니다. 서명하기 전에 한국어로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고, 잘못 서명한 것을 되돌리는 데는 몇 달이 걸립니다.
영어가 서툴러도 기한은 똑같습니다
아쉽지만 기한은 영어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NSW에서 법정 급여 청구는 사고 후 3개월 안이고, 사고 다음 날부터 소득 지원을 받으려면 28일 안입니다. 경찰이 현장에 오지 않았다면 28일 안에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VIC는 1년 안에 TAC에 청구해야 하고, 경찰 신고가 없으면 TAC에서 받을 수 없으며, 합당한 지연 사유가 있으면 TAC가 3년 안에서 청구를 받아 줄 수 있습니다. NSW에서 3개월을 넘기셨다면 늦어진 데 대한 '충분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3년 안에 청구할 수 있는데, 이 설명은 사고일부터 설명하는 날까지의 행동과 인식을 모두 담아야 하고, 영어가 어려웠다는 사정만으로 설명이 되는지는 상황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서류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한 안에 먼저 내는 것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영어 때문에 청구를 미루시거나, 알아듣지 못한 채 넘어가시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통역을 부탁하는 것은 권리이고, 한국어로 먼저 정리해 두면 생각보다 덜 막막합니다. 호주 생활이 영어 서류 때문에 더 고단해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받으신 영어 서류나 편지를 사진으로 보내 주시면 무슨 내용인지, 언제까지 무엇을 하시면 되는지 한국어로 먼저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예스가 아니라 질문부터 하셔도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호주 교통사고 보험 청구를 한국어로 할 수 있나요?
청구 서류는 영어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통역을 요청해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NSW에서는 CTP Assist(1300 656 919)가 절차 안내와 통역 주선을 하고, VIC에서는 TAC(1300 654 329)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먼저 말씀하시면 됩니다. CTP Assist는 자격을 확인한 뒤 법률 조언 서비스로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사고 경위와 치료 기록을 한국어로 먼저 정리해 번역하시면 설명이 정확해집니다.
보험사와 통화할 때 통역을 요청해도 되나요?
NSW에서는 보험사·SIRA·PIC에 통역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통화 첫머리에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이해하지 못한 채 "예"라고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내용은 이메일 등 서면으로 다시 받아 두시면 번역해 확인하기 쉽습니다. 통역을 거친 답변이 잘못 전달됐다고 느끼시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PIC에서 다툴 때도 통역을 요청할 수 있나요? 비용은요?
PIC에도 통역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PIC의 분쟁 해결과 의료 평가는 무료입니다(PIC 안내). 다만 PIC로 가기 전에 보험사 내부 재검토를 먼저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MAIA s 7.11), 받으신 결정 통지서의 이의 절차와 기한부터 확인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