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길에서도 일터에서도 아닌, 우리가 돈 주고 산 물건 때문에 다치신 경우, 그러니까 제조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출근길에 타던 전동 킥보드 브레이크가 갑자기 듣지 않아 넘어지셨거나, 아이에게 준 장난감에서 작은 부품이 떨어져 나와 삼키는 일이 생겼거나, 부엌의 냉장고가 과열되어 불이 나면서 화상을 입으셨거나,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산 약을 먹었는데 포장 어디에도 없던 부작용으로 입원하셨다면, 머릿속이 이렇게 복잡해지실 겁니다.
"설명서대로 안 쓴 내 잘못인가?"
"만든 회사가 중국에 있다는데 거기까지 어떻게 따지지?"
"영수증은 어디 뒀더라… 그냥 버릴까?"
"이 정도 일로 회사를 상대한다는 게 유난 아닐까?"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새 제품으로 바꿔 받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새 킥보드를 받는다고 부러진 손목 치료비와 쉬어야 했던 날의 일당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호주에서는 매년 수천 건의 결함 제품 부상 사고가 생기는데도,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넘어가십니다. 물건 값 몇십 달러 돌려받자고 큰 회사와 다투는 게 유난처럼 느껴지시는 마음은 저도 이해하는데요, 제조물 책임에서 따지는 것은 물건 값이 아니라 그 물건 때문에 다친 몸과 그 뒤에 따라온 손해입니다.
계약하지 않은 제조사에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조물 책임은 결함이 있는 제품 때문에 소비자가 다치거나 재산 피해를 입었을 때 제조사, 수입업자, 판매자가 법적 책임을 지는 제도인데요, 호주에서는 Australian Consumer Law, 줄여서 ACL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Competition and Consumer Act 2010 Schedule 2에 들어 있는 이 법은 안전하지 않은 제품으로 소비자가 다쳤을 때 제조사와 공급자에게 민사상 배상 책임을 지웁니다.
이 생각의 뿌리는 영국의 Donoghue v Stevenson 판결인데, 소비자가 제조사와 직접 계약한 적이 없어도 다친 데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고, 호주에서는 ACL을 통해 그 원칙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킥보드를 회사에서 직접 사지 않고 동네 가게에서 사셨더라도 청구의 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설명서를 끝까지 안 읽으셨다고 미리 주눅 드실 필요도 없는데요, 문제가 된 위험이 설명서에 제대로 적혀 있었는지부터가 따져 볼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가전제품 설명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분은 변호사 중에도 드뭅니다.
결함은 보통 세 갈래로 나누는데요, 같은 모델 전부가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면 설계 결함(Design Defect), 설계는 괜찮은데 공장에서 잘못 조립된 특정 배치의 배터리처럼 일부 제품만 문제라면 제조 결함,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어도 위험에 대한 경고나 사용 지침이 모자라거나 빠졌다면 경고 결함으로 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약의 부작용 표시가 없던 경우가 경고 결함의 대표적인 예이고, 작은 부품이 쉽게 빠지는 장난감이 호주 제품 안전 기준(AS/NZS)을 어겼다면 설계 결함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킥보드나 자전거라면 브레이크 오작동뿐 아니라 배터리 폭발, 타이어 결함으로 넘어져 골절이나 머리를 다치신 경우가 많고, 가전제품은 냉장고뿐 아니라 전자레인지나 충전기가 과열되어 불이 나는 경우도 흔합니다. 약은 처방전 없이 사는 일반 의약품(OTC)이나 건강 보조제도 심각한 부작용 경고가 빠져 있었다면 같은 이야기가 됩니다. 포장 식품에서 금속이나 유리, 플라스틱 조각이 나와 입안이나 소화기를 다치신 경우도 청구 대상이 됩니다.
만든 회사가 해외에 있어도 괜찮습니다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제조사가 해외 회사인데 호주에서 되나요?"인데요, 됩니다. 해외 본사라도 호주 시장에 제품을 공급했다면 책임을 질 수 있고, 제조사가 해외에 있으면 호주 수입업자가 1차 책임자가 됩니다. 유통업자와 소매업자도 상황에 따라 책임을 지는데, 특히 마트의 자체 브랜드(PB) 제품은 판매자가 제조사와 똑같은 책임을 집니다. 실무에서는 여러 당사자를 한꺼번에 상대방으로 세우는 것이 보통이고, 그중 한 곳이라도 호주에 법인을 두고 있으면 청구할 수 있습니다. 바다 건너까지 직접 찾아가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온라인으로 산 물건이라 판매처가 어디인지 헷갈리시면 주문 내역 화면을 캡처해 두시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제일 아까운 실수는 제품을 버리는 것입니다
청구는 일반적으로 다친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년 안에 해야 하는데요, 각 주의 Civil Liability Act가 기준이 되고 ACL에 따른 청구는 기간 규정이 따로 있을 수 있어서 내 경우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꼭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주제에서만큼은 제가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함 제품 그 자체를 절대 버리지 마세요. 고장 난 킥보드가 베란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어서 가족들 눈총을 받으시더라도, 수리하지도 버리지도 말고 그대로 두셔야 합니다. 그 킥보드가 사건에서 제일 말 잘하는 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영수증과 포장지, 설명서, 구매 기록도 함께 모아 두시고, 다친 직후에 제품과 다친 부위, 사고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 두시면 좋습니다. 가전제품이라면 ACCC에 리콜 이력이 있는지도 찾아보시고, ACCC나 주 소비자 보호기관에 사고를 신고해 두시며, 의료 기록과 치료비 영수증도 빠짐없이 챙겨 두세요. 사고가 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제품은 고쳐지거나 사라지고, 영수증은 지갑 속에서 글씨가 날아가기 마련이라, 처음 며칠 동안 모아 두신 것이 나중에 사건의 뼈대가 됩니다.
새로 산 물건이 생활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호주 생활의 작은 즐거움인데, 그 물건이 다치게 하는 일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셨다면 제품 사진과 영수증, 다친 부위 사진, 병원 기록을 보내 주세요. 누구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는지와 지금 무엇을 더 남겨 두셔야 하는지부터 한국어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전동 킥보드 브레이크 고장으로 넘어졌는데 제조사에 배상 청구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브레이크 오작동, 배터리 폭발, 타이어 결함 등으로 넘어져 골절이나 두부 손상을 입었다면 호주 소비자법(ACL)에 따라 제조사 또는 수입업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와 직접 계약한 적이 없어도 청구가 가능합니다. 같은 모델 전부에 같은 위험이 있다면 설계 결함, 특정 제품에서만 생긴 문제라면 제조 결함에 해당합니다. 킥보드를 수리하거나 버리지 말고 그대로 보관하세요.
불량 제품 제조사가 중국이나 해외 회사인데 호주에서 청구가 되나요?
됩니다. 해외 제조사라도 호주 시장에 제품을 공급했다면 책임 대상이 될 수 있고, 제조사가 해외에 있으면 호주 수입업자가 1차 책임자가 됩니다. 유통업자와 판매자도 일부 상황에서 책임을 지며, 자체 브랜드(PB) 제품은 판매자가 제조사와 동일한 책임을 집니다. 실무에서는 여러 당사자를 동시에 피청구인으로 지정하며, 한 곳이라도 호주에 법인을 두고 있으면 청구가 가능합니다.
결함 제품 때문에 다쳤을 때 증거는 뭘 남겨야 하나요?
결함 제품 자체를 절대 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리하거나 폐기하지 말고 원본을 안전하게 보관하세요. 영수증, 포장지, 설명서, 구매 기록을 함께 보관하고, 부상 직후 제품·부상 부위·사고 현장 사진을 찍어 두세요. ACCC 또는 주 소비자 보호기관에 사고를 신고하고, 의료 기록과 치료비 영수증도 모두 모아 두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청구는 일반적으로 부상 인식일부터 3년 이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