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NSW와 VIC 기준입니다.
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 수술이나 진료가 끝난 뒤에 오히려 삶이 크게 달라져 버린 분들과 그 가족분들이 꼭 알아 두셔야 할 의료 과실 배상 청구에 대해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수술대에 누울 때 우리가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몸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과 미래, 그리고 가족인데요, 수술 뒤에 영구적인 마비가 남았거나, 오진으로 암이 너무 늦게 발견되어 치료 기회를 놓쳤거나, 마취 사고로 뇌 손상을 입으셨다면 그것은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결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을 겪으신 분들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수술에는 원래 위험이 있다고 했으니 내가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
"영어로 의사랑 다투는 건 엄두가 안 나."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의사 선생님께 꼬치꼬치 묻는 것조차 실례 같아서 "선생님이 알아서 잘 해 주셨겠지" 하고 넘어가는 분이 많은데요, 호주 법은 의사에게 환자에게 중요한 위험을 충분히 알려 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호주 고등법원의 Rogers v Whitaker 판결이 바로 그 이야기이고, 이 판결은 지금도 호주 의료 과실법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묻는 것은 실례가 아니라 환자의 권리라는 뜻입니다.
나쁜 결과와 과실은 다릅니다
의료 과실(Medical Negligence)은 의사, 외과의, 마취과 전문의, 간호사, 병원 같은 의료인이 환자에 대한 주의 의무(Duty of Care)를 어겨서 실제 피해를 입힌 경우를 말하는데요,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모두 과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구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같은 상황의 합리적인 의료 전문가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했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 잘못이 직접 부상이나 피해를 불렀다는 점, 그리고 영구 장애나 추가 치료비, 소득 손실처럼 실제로 입증할 수 있는 손해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기준을 재는 법은 주마다 조금 다릅니다. NSW에서는 Civil Liability Act 2002가 중심이 되어 의료인의 행위가 '합리적인 의료 전문가 집단'의 수준에 맞았는지를 따지고, VIC에서는 Wrongs Act 1958이 적용되는데 영국의 Bolam/Bolitho 기준을 호주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눈여겨보실 점은 VIC 법원이 '의료계에서 다들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을 면제해 주지 않고, 그 관행이 논리적이고 방어할 수 있는 것인지까지 따로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청구가 문제 되는 중대한 경우들은 대개 이런 모습인데요, 엉뚱한 부위를 수술했거나 거즈나 집게 같은 도구가 몸 안에 남아 2차 피해가 생긴 경우는 명백한 과실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증상을 잘못 진단하거나 검사를 미뤄서 대장암, 유방암, 폐암 같은 병이 뒤늦게 발견되고 치료 기회를 잃은 경우, 마취 용량 오류로 저산소증이 생겨 영구적인 뇌 손상이 남은 경우, 그리고 분만 중 태아 심박수 이상을 놓치거나 제왕절개 결정이 늦어져 아기가 뇌성마비 같은 영구 장애를 입은 경우도 있습니다. 마취과 전문의의 잘못으로 수술 도중 의식이 돌아오는 일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다만 이런 장면을 읽으시면서 "내 경우도 딱 이거네" 하고 바로 결론을 내리시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보셔야 하는데요, 의료 행위에는 원래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있어서 수술 뒤에 합병증이 생겼다고 반드시 의사의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의료인이 합리적인 전문가의 기준을 지켰는지는 결국 독립적인 의료 전문가가 기록을 검토해야 판단할 수 있고, 저도 그 검토 없이 "된다, 안 된다"를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3년이라는 시계는 생각보다 빨리 갑니다
NSW에서는 원칙적으로 피해가 생긴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년 안에 소송을 내야 하는데요, 과실을 알지 못했던 사정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최대 12년이라는 절대 기한이 있습니다. VIC도 Wrongs Act 1958과 Limitation of Actions Act 1958에 따라 마찬가지로 알게 된 날을 기준으로 3년이 적용되고, 미성년자나 인지 장애가 있는 분은 기간을 따로 셉니다.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되시더라도 예외가 적용되는지는 꼭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의료 과실 사건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독립적인 의료 전문가 증인을 구해야 하고 그 비용이 적지 않으며, 상대편 병원과 의사 뒤에는 큰 의료보험과 전문 방어팀이 있고,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며, 몇 년씩 걸리기도 합니다. 수술 기록은 변호사인 저도 의학 사전을 옆에 펴 놓고 한 줄씩 읽습니다. 그래서 혼자 판단해서 포기하시는 것도, 반대로 서둘러 소송부터 정하시는 것도 권하지 않습니다.
지금 해 두시면 좋은 것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합병증이 생긴 건데 이것도 의료사고인가요?"인데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기록을 봐야 합니다. 수술 기록, 검사 결과, 처방전, 입원 기록을 빠짐없이 모아 두시고, 언제 어떤 증상이 시작됐는지 날짜별로 일지를 써 두시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의료 기관에서 제2의 소견(Second Opinion)을 받아 보시는 것도 좋고, 수술이나 오진이 있었던 날부터 3년이 가까워지고 있다면 서둘러 상담을 받으셔야 합니다.
배상을 받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다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정당한 배상은 재활 치료비와 미래 소득 손실, 간호 비용, 그리고 무너진 삶의 질을 다시 세우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과 가족분들이 호주에서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만약 마음에 걸리는 수술이나 진료가 있으셨다면 수술 날짜와 병원 이름, 지금 가지고 계신 의료 기록을 사진으로 보내 주세요. 시효가 얼마나 남았는지와 어떤 기록을 더 받아 두셔야 하는지부터 한국어로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수술 후 합병증이 생겼는데 전부 의료사고인가요?
아닙니다. 의료 행위에는 본질적인 위험이 있어서 합병증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의사의 과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청구가 성립하려면 의료인이 같은 상황의 합리적인 전문가라면 하지 않았을 행위를 했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 과실이 피해를 초래했다는 점, 실제 손해가 있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합니다. 이 판단에는 독립적인 의료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하므로 스스로 포기하거나 성급히 결정하지 마세요.
호주 의료과실 소송 시효 3년 지나면 끝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NSW는 피해 발생 사실을 인식한 날부터 3년이 원칙이지만, 과실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 기간이 연장될 수 있고 최대 12년의 절대 기한이 있습니다. VIC도 인식 기준 3년이 적용되며, 미성년자나 인지 장애가 있는 피해자는 별도의 기간 계산 규정이 있습니다. 시효가 지났다고 생각되더라도 예외 적용 여부를 변호사와 확인하세요.
오진으로 암이 늦게 발견됐는데 청구할 수 있나요?
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의료진이 증상을 오진하거나 검사를 지연해 암이 뒤늦게 발견되고 치료 기회를 잃은 경우는 중대 과실 시나리오 중 하나입니다. 다만 오진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인 전문가 기준을 벗어난 과실, 그로 인한 피해, 실제 손해를 모두 입증해야 합니다. 수술·검사 기록과 증상 일지를 보관하고 다른 의료기관에서 제2의 소견을 받아 두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