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제도 모두 주(州)마다 법과 운영 기관이 다릅니다. 이 글은 공통된 큰 틀을 설명하며, 구체적인 기준은 사고가 난 주의 제도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개인상해 전문 로펌 리틀즈의 이려진 변호사입니다. 지난 두 편에서 개인상해와 배상의 기본 개념을 짧게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부터는 생활 속에서 실제로 자주 마주치는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려고 합니다. 그 출발점은 호주에서 살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치게 되는 두 가지 강제 보험, 교통사고 때의 CTP(Compulsory Third Party, 강제 대인 보험)와 일하다 다쳤을 때의 WorkCover입니다. 두 제도 모두 주마다 법과 운영 기관이 조금씩 다르니, 오늘은 큰 틀을 잡는다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어 주세요.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한국처럼 내 보험사에 전화하면 되나?"
"상대방 보험사 직원은 언제 오는 거지?"
"일하다 다친 건데, 사장님께 말을 꺼내도 되나?"
한국에서는 현장 협상, 호주에서는 진료 기록
한국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보통 각자 보험사에 접수하고, 담당자가 나와 과실 비율을 따져 대인과 대물을 한꺼번에 합의로 정리합니다. 합의가 어렵거나 사고가 크면 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 분들은 사고가 나면 일단 휴대전화를 꺼내 보험사 긴급출동 번호부터 누르시는데, 호주 도로 한복판에서 그 번호를 누르고 기다리셔도 양복 입은 담당자가 달려오는 일은 없습니다. 기다리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의사의 진료 기록입니다.
호주는 구조가 다릅니다. 사람이 다친 부분은 차를 등록할 때 함께 적용되는 강제 대인 보험, 즉 CTP 제도로 처리하고, 차 수리비 같은 대물은 각자 선택해 든 자동차 보험이나 상대방과의 청구로 따로 처리합니다. 이름과 운영 방식은 주마다 달라서, NSW는 CTP 보험사가 맡고 SIRA가 규제하며 치료비와 소득 지원은 과실과 관계없이 주되 손해배상에는 과실과 부상 정도 요건을 붙이고, VIC는 TAC(Transport Accident Commission)라는 공공 기관이 과실을 따지지 않고 운영하면서 손해배상에는 'serious injury' 요건을 두며, QLD와 WA는 다른 사람의 과실이 있어야 하는 과실 기반 제도이고 WA에는 중상해를 위한 별도의 무과실 지원 제도도 있습니다.
그래도 공통점은 분명한데요, 다친 사람이 가해 운전자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다투는 대신 제도와 보험사를 상대로 치료비와 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입니다. 보험사는 치료 과정과 의료 기록을 바탕으로 지원 여부를 판단하고, 부상이 심각하면 앞으로의 소득 활동에 미칠 영향까지 따져 손해배상액을 산정합니다. 그러니 병원에 오래 누워 있는다고 배상이 늘어나는 일은 없고, 거꾸로 말하면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고 기록을 남겨 두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상담하다 보면 유학생이나 워홀러분들이 제도를 몰라 치료비와 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귀국하시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교통사고로 다치셨다면 비자 종류와 관계없이 청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 짐부터 싸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일하다 다쳤다면, 내 실수여도 괜찮습니다
상담 중 흔히 듣는 질문이 바로 "회사 잘못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인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호주의 업무 중 부상 제도는 기본적으로 과실을 따지지 않는 무과실(no-fault) 원칙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다친 것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만 보여 주시면 되고 고용주의 잘못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 실수로 다치셨더라도 치료비와 쉬는 동안의 소득 지원, 재활 같은 법정 급여를 청구하실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고용주의 부주의로 다치셨다면 주별 요건을 충족할 때 법정 급여와 별도로 고용주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쪽은 고용주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고, 주마다 부상 정도 같은 추가 요건이 붙습니다.
보험료는 고용주가 내고 근로자는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직원을 둔 고용주는 원칙적으로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급여를 현금으로 받는지, 어떤 비자를 가지고 있는지가 청구 자격을 곧바로 좌우하지는 않지만, 근로자인지 개인 사업자인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애매하시면 물어봐 주세요. 고용주가 보험에 들지 않았거나 서류에 협조하지 않아도 근로자가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주마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WorkCover는 흔히 통칭으로 쓰는 말이고 실제 기관 이름은 주마다 달라서, NSW는 SIRA가 규제하고 icare와 보험사가 운영하며, VIC는 WorkSafe Victoria, QLD는 WorkCover Queensland와 Workers' Compensation Regulator가 맡고, WA는 WorkCover WA가 2024년 7월 1일 시행된 새 법에 따라 규제합니다.
그런데 한국 분들은 이 청구를 유독 미안해하십니다. 사장님이 형님 같고 사모님이 형수님 같아서, 다쳐도 말을 못 하고 진통제만 드시다가 결국 한국에 돌아가 큰 치료비를 자비로 내시는 경우도 봤습니다. WorkCover는 바로 그런 상황을 위해 고용주가 들어 두는 보험이니, 형님께 미안해하실 일이 아닙니다. 형님도 그러라고 보험료를 내고 계신 겁니다.
어느 쪽이든 기억해 두실 것
다치셨다면 바로 진료를 받고 경위를 의사에게 있는 그대로 말씀하세요. 신고와 청구에는 주와 제도마다 다른 기한이 있으니 늦어지기 전에 한 번 확인해 두시고, 출퇴근길이나 업무 중 교통사고처럼 CTP와 WorkCover가 함께 문제 되는 경우에는 어느 쪽으로 청구할지가 주별 규정에 따라 달라지니 혼자 정하지 마세요. 보험사 결정에 동의하기 어려우실 때도 대부분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가 있으니, 결정 편지를 받으셨다고 거기서 끝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순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호주에서 사고 없이 즐거운 추억만 쌓아 가시길 바랍니다. 다만 혹시 다치셨다면, 교통사고든 일하다 다치신 경우든 보험사나 고용주에게서 받은 서류와 진단서 사진만 보내 주셔도 어느 제도로 어떻게 시작하면 될지 제가 먼저 살펴 드리겠습니다. 한국어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회사 잘못이 없어도 호주에서 업무 중 부상 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원칙적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호주의 업무 중 부상 배상 제도는 기본적으로 무과실(no-fault) 원칙으로 운영되어, 근로자는 부상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 되고 고용주의 잘못을 입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의 실수로 다쳤더라도 치료비와 휴업 기간 소득 지원 같은 법정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고용주의 과실로 다쳤다면 주별 요건에 따라 별도 손해배상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호주 업무 중 부상 보험료는 직원 월급에서 나가나요?
아닙니다. 업무 중 부상 보험료는 고용주가 부담하고, 근로자는 보험료를 내지 않습니다. 직원을 고용한 고용주는 원칙적으로 업무 중 부상 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업무 중 부상 보험은 일하다 다친 근로자를 위해 고용주가 가입해 두는 제도이므로, 일하다 다쳤다면 치료와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고용주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청구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근로자가 직접 청구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방법이 주마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하다 교통사고가 났으면 CTP와 업무 중 부상 중 어디에 청구하나요?
업무 중에 일어난 교통사고라면 CTP와 업무 중 부상이 함께 문제 될 수 있고, 어느 쪽으로 청구할지는 주별 규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상담을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어느 쪽이든 다쳤다면 바로 진료를 받고 사고 경위를 의사에게 정확히 말씀하세요. 신고와 청구에는 주와 제도마다 다른 기한이 있으니 늦어지기 전에 확인하셔야 합니다.
